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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KSoP 부회장]왕재덕 여사 기독교인 여성 필란트로피스트
  • 작성일
  •   2018.11.19 10: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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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재덕여사 (王在德, 1858~1934) 기독교인 여성 필란트로피스트

 

왕재덕여사는 안정근(安定根, 안중근의 동생)의 장모이며, ​독립운동가 이승조(李承祚)의 모친이다. 1858년 6월 18일 황해도 신천에서 부농 왕시권의 2녀로 출생하였다. 18세 때에 신천의 이영식에게 출가, 29세에 남매 및 유복자를 가진 과부가 되었다.

​근면절제로 저축 생활을 이어가는 한편, 자신의 토지에서 경작해 들인 벼를 진남포의 정미소로 운반해 그곳에서 백미를 만들어 평양 등지의 도회지에다 출고함으로써 생산에서 소비까지 다 소화시켜 그의 재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그는 값싼 황무지를 사서 개간하여 옥토를 만들어 대형 농장을 경영하게 되었다. ​우리 민족의 살 길은 곧 농촌 부흥에 있으며 농민학교가 설립되어야 함을 인식하였다. 그래서 ​1929년 같은 신천군 북부면 서호리(西湖里)에 ‘신천농민학교’를 설립. ​당시 돈 20만원으로 재단법인을 설립하였고 ​1934년에는 다시 개인재산을 희사, 신천에 교회당을 건립하기도 했다.

또한 왕재덕 여사는 사위 안정근에게 돈을 보내서 독립운동을 도왔고, 상하이 등을 방문하였다. 왕재덕은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회장으로 치러진 여사의 장례식에는 2만 명의 조문객이 모여 슬퍼하였다고 한다.

 

1934년 6월 17일 동아일보 기사

‘조선의 할머니 왕재덕 여사’ 사회장으로 2만여 군중이 모인 가운데 성대히 치러졌다. ​황해도 신천에 태어났고 18세 결혼해 2남1녀를 두었으나 29세에 남편 이영식이 사망했다. 그 후 타고난 근면함과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남편이 남긴 땅을 일구고 재산을 모아 수십만원의 자산을 가진 부호가 되었다. 그녀는 토지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친일파와 조선총독부의 일본인들 앞에서도 자신의 땅에 대한 권리를 당당히 주장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독립운동, 육영사업, 종교단체 등에 기부, 빈민 구제에 자신의 재산을 내놓는 일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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