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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KSoP 자문위원] 모금가와 윤리
  • 작성일
  •   2020.05.22 10: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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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한 음악단체의 대표를 만났다.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는 이 분이 가지고 있는 모금 고민을 털어 놓는데… 이야기인즉슨 단체의 연주활동을 위해 기부를 받고 싶은데 아무래도 호소력이 떨어질 것 같아서 단체의 여러 가지 활동 중에 하나인  극빈국에 악기를 보내고, 음악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에 기부를 요청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모금을 지속하기에는 자신과 남이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가에 대해 내적 갈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한 단체의 비윤리적 모금 사례가 기사화되었다.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지만, ‘현실보다 형편을 과장해서 기부자들에게 호소해왔다’ ‘기부된 기금이 투명하게 집행되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이 두 가지가 주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현실보다 과장해서 기부자에게 호소하는 것.’ 이것은 모금가라면 부딪히게 되는 유혹 중에 하나이다. 특히나, 구제단체에서 일하고 있다면. 한 부모 아이가 고아로 표현되고, 착실한 아이가 거리의 깡패였다는 듯이 표현되는 일, 큰 명분을 위해 작은 일은 왜곡하는 일은 모금가가 매일 일어나는 의사결정의 유혹에서 경계 해야 하는 일이다.

  Independent Sector (2002)는 비영리단체가 직면하는 윤리적인 문제의 3가지 국면을 소개했다. 첫째는 합법(legal)이냐 불법(illegal)이냐의 문제이다. 이는 오히려 간단하다. 법조항에 비추어 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일하면 되는 것이다. 비영리단체 종사자들이 공금을 횡령하거나 하는 범주의 문제들이 해당된다.

  두번째 국면은 합법이긴하나 윤리적인가하는 문제(legal but unethical)이다. 가령, 우리 단체에 가족이 없으신 장기기부자가 우리 단체에 재산의 70%, 담당자였던 나의 진심에 감동하셔서 나에게 30%의 유산을 남기셨다. 이 유산을 내가 받는 것이 적절할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겠지만 기부자와의 관계에서 개인적인 이득을 보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필자도 비슷한 갈등에 직면한 적이 있다. 한 기부자가 상장 예정인 주식을 기부하는데 상장 정보는 이미 공개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기부자를 만나기 전에는 필자는 몰랐지만), 주식 비전문가가 봐도 상장 후 가치 상승이 기대되는 주식이었다.

  이 주식을 당장 살 것인가? 강의에서 이 사례를 참석자들에게 물어보면 많은 참석자들, 특히 중년의 남성들은 “당연히 사야지요!”라고 답한다. (중년 가장들의 삶의 무게를 이해한다. 참고로 현재주가는 기부 당시 산정금액에서 20배이상 뛰었다! 필자도 샀더라면 모금가로서 뿐 아니라 거액기부자로 여러분을 만나고 있을 지도…)

  세째 국면은 윤리적인 문제의 딜레마, 즉 불법도, 비윤리적인 것도 아니지만 가치의 문제끼리 상충하는 것이다. 가령, 우리 단체에서 모금을 더 해서 더 많은 수혜자에게 혜택을 주고 싶다. 그러나 당장은 모금활동에 쓸 예산이 없어서, 수혜 프로그램 예산을 줄이고, 모금에 투자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대중들은 비영리단체에게 더 엄격한 윤리적 잣대를 기대한다. 과연 비영리단체는 영리부문이나 정부부문에 비해 더 윤리적으로 활동하고 있을까? 사실 그렇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2008년도에는 비영리단체 윤리성도 영리, 정부부문과 비슷하다는 조사결과가 미국에서 있었다. 어떻게 비영리부문의 윤리성을 개선할 수 있을까?

  첫째, 제도적으로 보완 장치들이 필요하다. CFRE나 AFP 회원이 되면 윤리규정 준수를 서약하게 되어 있다. AFP 윤리규정은 모금가들이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의무, 기부요청과 기부금사용, 정보제공, 보상 등 모금가들이 처하게 되는 윤리적인 문제를 25개 조항으로 기준을 마련해 놓았다. 한국에서도 이런 규정을 만들고, 모금가들에게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두번째 보완은 감시기능을 하는 장치이다. 미국에서는 가이드스타, 채러티 내비게이터 등 비영리단체 감시 기능을 하는 비영리단체들이 있다. (이들이 늘 맞는 것은 아니지만) 비영리단체가 정부에 제출하는 양식을 볼 수 있고, 비영리단체 랭킹도 매겨 기부자들이 정보를 얻도록 하고 있다.

  셋째는 단체의 거버넌스의 건강함을 확보하는 것이다. 영리이든 비영리이든 문제가 되는 단체를 보면 거버넌스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잘 작용하지 못하는 구조, 설립자의 의사결정에 집중되어 있는 구조일 때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설립자의 가치에 따라 검토되어야 하는 윤리적인 이슈들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간과될 수 있다. 균형 잡힌 이사회의 설립과 이사들이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것이 중요하다.

  네번째는 모금가의 양심이다. 제도도 구비될 수 있고, 모금지식은 단기간에 습득 될 수 있겠으나 윤리적인 의사결정의 문제는 결국 개인의 결정이다. 윤리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은 이 사람의 삶의 오랜 내재된 가치가 발현되는 문제이다. 계속된 자기평가와 반추가 있어야 윤리적인 모금가로 성숙할 수 있는 것 같다. 모금가가 전문가라는 인식을 확산하는 데는 윤리성에 대해 신뢰를 주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어떤 전문직도 윤리성이 없으면 그것은 칼을 강도에게 맡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지금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수레를 타고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 마을 한 노인에게 저 마을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물어보니 ‘천천히 가면 반시간, 빨리 가면 반나절 걸린다’ 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일까? 앞만 보며 정신 없이 재촉해서 가다 보면 앞에 물웅덩이가 있는지, 돌부리가 있는지 못 살피고 그냥 가는 거다. 가다 물웅덩이에 빠지기도 하고, 바퀴도 빠져 수리해서 가기도 하여 반시간이면 갈 길을 결국 반나절 걸려 도착한다는 이야기다.

  비영리단체들이 효율성만 생각하다 윤리적인 문제를 간과하게 되면 결국 반시간이면 갈 길을 반나절 걸려 가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도착한 곳에서도 “여기가 아닌가벼”라고 하고 있을지 모른다.

출처:한국기부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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